까마귀의 비명이 날카롭게 붉은 하늘을 할퀴었다. 시취로 더럽혀진 공기 위로 검은 그림자 서너 개가 맴을 돈다.
손가락의 살 사이로 박혀 드는 흙 알갱이는 하나 하나가 모두 선득하고 또 날카로웠다. 손바닥에 파인 가는 틈, 지문 사이로 얽혀 들어 오는 감각이 마치 바늘에 찔린 것처럼 아팠다. 검은 흙은 그리도 피를 듬뿍 머금었음에도 조금 파내려 가자 그 위에 뿌려졌던 피는 아랑곳 않는다는 듯이 검기만 했다.
처음부터 맨 손으로 땅을 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제 그가 직접 목을 친 사내의 낡은 검으로 파기 시작했었다. 원체 질이 안 좋은 검이었기 때문인 것인지, 아니면 본래 용도가 아닌 데에 혹사당한 때문인지 표토를 조금 파헤쳤을 때 즈음 칼은 맥없이 부러져버렸다. 결국 카츠라는 칼집으로도 파보고 주변에 널린 다른 물건들로도 시도를 하다가 결국 다 포기하고 조금 전부터는 직접 손으로 땅을 헤집는 중이다.
식은 용암처럼 검은 흙 위로 땀방울이 뚝뚝 떨어져 더욱 검은 자국을 만든다. 이마 위로 비 오듯이 땀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카츠라는 그제야 알았다. 하지만 땀을 훔치려고 해도 두 손이 모두 흙투성이라 얼굴에 손을 댔다간 바로 시커멓게 될 것이 분명했다. 결국 일을 다 끝내고 씻자고 결정을 내리고 다시 하던 작업에 몰두했다. 곧 해가 진다. 그 전에 끝내고 둔영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창 땅을 파헤치는 카츠라의 옆에는 낡은 옷가지로 얼굴을 덮어둔 죽은 병사의 유해가 뉘여 있었다. 호기로 전쟁에 따라 나섰다가 갈수록 어려워 지는 전황에 탈영하는 병사들이 속출하는 와중이다. 흐트러져가는 군기를 바로 세우려면 이들을 엄하게 다스리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일. 이 이름 모를 탈영병도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을 내세워 자비를 호소해 왔지만, 일군을 이끄는 입장에서는 감정을 앞세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직접 베어 목을 하루 동안 목을 본보기로 둔영 가운데에 걸어 두었다.
그 죽은 자의 유해를 끌고 둔영에서 떨어진 곳까지 홀로 온 카츠라는 직접 땅을 파는 중이다. 뒤에서 어이없다는 헛웃음이 들려왔다.
“뭐 하는 거냐, 즈라?”
익숙한 목소리다. 어조에서 이미 다카스기가 그를 비웃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게 전해졌으므로, 카츠라는 들린 목소리를 무시하고 하던 작업에 열중했다.
그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아군의 일부를 미끼로 희생시켜 본대를 지켜낸 일주일 전 전투의 일로 카츠라는 요 며칠간은 의도적으로 다카스기를 무시하고 있던 참이다.
그러나 상대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은 다카스기도 같았다.
“어디서 뭘 하나 했더니…… 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이야? 혹시 전에 탈영한 놈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한 거냐?”
카츠라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고 다만 손을 뻗어 흙 속으로 밀어 넣는 데에만 온 힘을 다해 집중했다. 다카스기는 포기하지 않고 비꼬았다.
“위선도 그 정도면 병이야. 즈라.”
역시 손으로 땅을 파는 건 좀 무모한 짓이었던 모양이다. 손톱 끝이 부러졌다. 그래도 카츠라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자비를 베풀 거면 철저하게 하라고. 도망가는 걸 그냥 눈감아 주면 됐잖아? 아니 차라리 여비라도 좀 쥐어서 보내는 게 낫지 않았어?”
한 명에게 허락하면 결국 모두에게 허락하는 꼴이 된다. 물꼬를 트면 둑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일 터이다.
답하지도 않은 말을 이미 듣기라도 한 것처럼 다카스기는 다시 힐난했다.
“아니면 그냥 버려 두던가. 본보기면 살이 다 썩어서 백골이 될 때까지는 놔둬야지.”
대놓고 이죽거리는 다카스기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무시하려 애쓰는 카츠라의 신경을 긁고 또 긁었다.
그리고 뒤 이어 나온 말은 이미 전장에 지치고 날카로워진 카츠라의 신경줄을 끊어놓기에 충분했다.
“이건 결국 너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자기 위안이라고. 꼴사나워.”
카츠라는 고개를 들었다. 말라 붙은 고목에 삐딱하게 기대 서서 고개를 모로 기울인 다카스기의 얼굴이 보였다. 입가에 걸린 미소는 의심할 여지 없는 비웃음이다. 카츠라는 얼마 남지 않은 자재력을 최대한 짜내어 화내지 않으려 애쓰며 말문을 열었다.
“나는 다만 사람으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려는 것뿐이다."
군법의 지엄함은 세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망자에 대한 도리 역시 지키지 않을 수 없다.
다카스기는 히죽히죽 웃었다. 병적인 웃음이다. 대체 언제부터 저 아이가 저렇게 웃게 되었더라. 카츠라는 순간적으로 아득함을 느꼈다.
“그게 네 위선이라니까.”
“위선처럼 보인다 해도 상관없다.”
다카스기는 어깨를 으쓱했다. 원체 고지식하고 고집불통인 녀석이니 그의 말이 이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다.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라 위선 맞아. 즈라. 오히려 네 위선이 망자에 대한 모욕이라고."
"뭐?"
"지금 네 옆에 엎어져 있는 그놈이 개처럼 기어서라도 살아서 돌아갈 수 있기를 더 바랐겠어 아니면 네 알량한 애도나 받으며 곱게 땅에 묻히기를 더 바라겠어?"
"......"
카츠라는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살려 달라며 울부짓던 죽은 자의 목소리가 다시금 가슴 속에서 메아리 친 탓이다.
이게 위선에 불과하다고?
"차라리 할 거면 제대로 자비를 배풀던가 아니면 철저하게 비정해 지던가, 둘 중 하나만 해. 양쪽 다 놓지 않겠다는 건 과욕이야."
마치 다카스기의 목소리에 동조라도 하듯이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날카롭게 하늘을 긁어올렸다. 그러나 카츠라는 단호하게, 또한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다. 그것이 진정 옳은 길 일 리 없다. 그는 그렇게 배우지 않았다.
카츠라는 낮게 물었다.
"그래서 넌 그런 방법으로 선생님을 구하겠다고? 선생님께서 그걸 기뻐하시리라 생각하는 거냐?"
다카스기의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다.
카츠라는 신경쓰지 않고 단호하게 날을 세워 말을 잘라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배운 적 없다."
당장이라도 칼을 뽑아들기라도 할 것만 같은 다카스기의 기세에도 카츠라는 담담할 뿐이다. 잠시 뜸을 두고 뽑혀 나온 다카스기의 말은 단호했으나 미묘한 앙금이 엉겨 있다. 카츠라는 그것을 분명히 알아 보았다.
"내 방식을 긍정해 주시던 아니면 나를 비난하시던 살아계셔야 혼이라도 날 수 있겠지."
"틀림없이 슬퍼하실 거다."
"상관없어."
담담하게 답하고 돌아서는 다카스기의 등은 본인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고, 카츠라는 굳이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은 그릇된 일.
이미 시작된 저 아이의 폭주는 알고 있다. 그러나 막지 못한 것은 그 심정에만은 온전히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카츠라는 가라앉는 석양빛에 하늘을 홀로 바라보며 낮게 한탄했다.
지금 막아야 한다고, 아마도 필히 후회하게 될거라고. 카츠라는 짙게 예감 했다. 그러나 알고 있다하여, 예상한다 해도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정도를 지키는 것도 사적인 연도 어떤 것도 쉬이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을 알았다.
어쩌면, 너무도 욕심이 많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버리는 것을, 그는 배우지 못했다.
어찌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질문은 너무 멀리 있는 이에게는 가 닿지 못했다. 그리고 영영 질문을 건네지 답을 듣지도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그는 다음 날 알게 되었다.
눈물보다 처연한 친구의 침묵과 그 아이의 핏기 어린 절규 앞에서 그는 온전한 아득함을 깨달았다. 이젠 대답없는 질문을 기댈 대상조차 없이 홀로 서게 된 순간.
카츠라는 더는 의미없게 된 물음을 다시 한 번 속으로 되뇌였다.
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귓전을 울리는 것은 억눌린 울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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