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tz,
under the full moon
0.
말레우스 말레피카렘(마녀의 머리를 부수는 철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졌지만 그보다는 철퇴기사단(오르도 말레우스 Ordo Malleus)이라는 별명으로 더 널리 알려진 집단의 부단장 토렌스 오카르토세 경은 방금 다 핀 담배꽁초를 바닥에 내던지고 주머니를 뒤졌다. (일단은) 인생을 오롯이 신과 교회에 바친 (말단 총알받이로 급조되긴 했지만 ‘일단은’) 신전기사단의 일원으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욕설을 중얼거렸다. 주머니가 빈 것은 아니다. 단지 거기에 담긴 것이 동강난 돗대만이 남은 헐렁한 담뱃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속으로 몇 마디 욕지기를 씹으면서, 담뱃갑을 훌렁 던지고 동강난 담배의 필터 달린 부분을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니코틴이 부족하면 뇌가 잘 안 돌아가니 안 될 말이다. 그는 길게 연기를 내뿜으며 그 뽀얀 연기가 전혀 티 나지 않을 정도로 먼지로 자욱한 예배당 안을 훑어보았다. 발을 한 걸음씩 내 딛을 때마다 구름처럼 뽀얗게 먼지가 인다. 그는 조금 감회에 젖은 눈으로 넓은 것을 제외하면 전혀 쓸 모 없는 건물을 응시했다. 아무리 조촐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운 곳이라지만 제대로 된 혈통도 지위도 없는 그들이 정식 기사단으로 인가를 받고 본부 건물까지 교황청으로부터 받아낸 것 자체가 기적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시작은 초라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닳고 닳은 클리셰지만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만들 생각이고, 또 자신이 있었다. 지금은 비록 먼지투성이 폐허에 가까운, 버리듯이 던져준 곳이지만 장차 교황청 직속의 은십자 기사단에 버금가는 곳으로 키워낼 심산이었다. 남아로 태어났으면 포부는 클수록 좋지 않은가.
그는 홀로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그의 발이 밟고 지나간 자리마다 거미줄보다 가늘게 얽혀 있던 어렴풋한 빛의 실이 부스러져 나갔다. 이제 어디를 어떻게 치우고 어떻게 새로운 기사단의 본거지로서 활용할 것인가 청사진을 짜면서 곳곳을 돌던 그가, 예배당 가장 안쪽에서 숨겨진 작은 문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그의 26년 인생을 나름 고이 지켜주었던 행운이 그 마지막 숨을 다했다. 하지만 본인은 당연히, 죽을 때까지 알지 못할 일이다.
먼지를 몇 리터 쯤 마셔가며 굳이 사슬로 친친 감긴 작은 문을 뜯어내자 지하로 통하는 좁은 계단이 나타났다. 토렌스는 라이터 불을 의지해 또 굳이 그 계단을 더듬더듬 내려갔다. 알아서 무덤을 찾아 기어들어가는 것이 종특인 인간인지라, 지금까지 무사했던 것은 의외의 운 빨이었을 뿐이다. 그 마저 이미 다 했으므로, 기어이 그는 계단을 벗어나 분명 지하임에도 너르게 열린 창으로 햇살이 비쳐드는 신비한 지하실을 발견했다. 이제 본인의 발치까지 다가온 위험을 전혀 모른 채, 토렌스는 이 장소를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에 빠져 걸었다.
그리고 미쳐 눈여겨보지 못한 돌부리가 그의 발에 태클을 걸었고, 오르도 말레우스의 부단장은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꼴사납게 앞으로 고꾸라졌다. 잠시 바닥에 누워 혼자 온 것을 스스로 칭찬하고 정말로 다행이라고 안심하고 또 안심한 그는 자존심 회복에 약간의 시간을 소요한 뒤 몸을 일으켰다. 막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검은 그림자였다.
어째서인지 그 깊고 깊은 어둠 속에서 붉은 눈 두 개와 마주친 것도 같았다. 어쩐지 웃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든 순간, 바람이 들어올 곳도 없는데 거친 회오리바람이 몰아닥쳤다. 푸득푸득, 날개 소리가 아프게 귓전을 때렸다. 수십 마리의 박쥐 떼가 그의 온 몸을 때리며 계단을 타고 지하실을 빠져나갔다. 날카로운 통증이 일고, 미약하지만 피냄새가 났다. 긁힌 건가?
“……뭐야?”
황당하게 남겨진 토렌스는 얼빠진 표정으로 먼지구덩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차마 말하기 쪽팔리지만 다리가 좀 풀렸다. 간신히 저 멀리로 날아간 정신을 수습해서 몸을 일으키자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 또 눈에 들어왔다.
검은 드레스와 검은 머리칼, 밀랍처럼 흰 피부, 그리고 유일하게 붉은 입술. 인형인가 했다. 하지만 인형이라기엔 너무 크고 리얼하다. 조각이라기엔 지나치게 살아 있는 사람 같다.
조금 전 그가 장렬하게 넘어지면서 방 한 가운데 놓여 있던 석관의 뚜껑을 밀어버렸던 모양이다. 그 덕분에 내용물이 드러난 건가. 다른 건 모르겠지만 딱 하나,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끝내주는 악취미인 것은 분명했다. 비단실 같은 검은 머리칼이 늘어져 한쪽 눈을 가리고 있었다. 좀 더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자 정말 당장이라도 숨 쉴 것처럼 보인다. 신기했다. 그때, 가는 소리가 귓전을 두드렸다. 목소리였다. 당장이라도 끊어져 버릴 것처럼 가느다란 목소리.
“……이…….”
“응?”
토렌스는 맹하니 더욱 가까이 귀를 들이댔다.
“…………피……냄새…….”
“엥?”
흰 손이 마치 갈고리처럼 휘며 그의 목을 감아 단단하게 잡아챘다. 살 끝으로 파고드는 손톱이 아팠다. 시체처럼 늘어졌던 흰 목이 방금 태엽을 갈아 끼운 인형처럼 휙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끼 낀 우물 같은 하나뿐인 녹색 눈동자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다음 순간 아찔한 통증이 목을 찔러왔다. 그리고 의식 자체가 어둠에 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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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위험한 곳에는 자청해서 가서는 안 되지만, 이미 토렌스는 그에 대해 반성할 시간도 기회도 없었다. 끝, 오와리~, 디 엔드! 하지만 인생 망하는 것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한데…… 과연 다음 편이 나올 수 있을 것인가!